큐티인 나눔

[05/01/2026] 머뭇거려도 결국 예수

더베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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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스라 8장 1-14절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큐티책을 펼친다. 또 계보야?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이름 한 명 한 명을 들여다본다. 각 가문의 숫자를 세어본다. 하나님께서 이 계보를 통하여 나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기에 오늘 이 계보를 읽게 하신 걸거다.


작은 개척교회지만, 그래도 거의 매주 (사실 아닌 주도 많다) 방문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새로운 분이 오시면 늘 묻게 되는 말, “어떻게 오셨어요?” “언제부터 신앙생활 하셨어요?” 다들 사연이 있다.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결국 그 발걸음을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된다.


오늘 본문도 그렇다. 고레스 왕 때 스룹바벨의 인도에 따라 1차 바벨론 포로 귀환이 진행된다. 그때 회중만 42,360명이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예레미야는 3차에 걸쳐 총 4,600명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고 기록한다. 그렇지만 많은 학자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바벨론 땅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최소 10만명, 많게는 30만명까지 추산한다. 그 중에 42,360명이 귀환했으니 저체의 2-30%만 돌아갔던 셈이고 바벨론 땅엔 7–80%의 사람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그 남은 자들 중에서 2차로 귀환한 자들의 명단이 나온다.


숫자만 따져볼까? 1차 때와는 규모가 다르다. 가장 많은 가문이 5절의 스가냐 자손인데 300명이다 (왜 큐티인에선 바핫모압 가문이 제일 많았다고 해설해놨는지 모르겠다. 스가냐가 300명, 요압 가문이 218명인데. 실수겠지_ 가장 적은 베배 가문이 28명이다. 대략 숫자를 다 더해보면 약 1,500명인데(가문의 사람 1496명에 혼자 올라온 사람 3, 에스라까지 포함하면 정확히 1,500명이다) 이들은 남자만이다. 에스라 2장의 1차 귀환 명단이 온 회중의 숫자이니 직접 비교는 어렵겠다. 여튼 에스라 8장의 귀환자 수가 1773명으로 일반적으로 말하는데 (뒤에 15절 이하에 등장하는 사람들까지 세서) 가족을 포함하면 5,000-8,000명으로 본다. 그렇다고 해도 1차와 비교하면 터무니 없이 작다.


그런데 사실 당연하다.


1차 귀환으로부터 80년이 지났다. 갈 사람들은 1차 때 다 떠났다. 그때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떠날 이유보다 떠나지 않을 이유가 훨씬 더 많았던 사람들”이다. 집도 있고, 사업도 있고, 관계도 있었다. 그런데 그랬던 자들이 지금 떠나는 것이다. 사실 이건 계산해서 나온 발걸음이 아니다. 편한 곳에서 불편한 곳으로, 안정된 곳에서 불안정한 곳으로 가는 거다. 오직 믿음으로만 설명 가능하다.


난, 머뭇거리다가 한 순종이 훨씬 더 믿음의 순종이라고 생각한다.


고민 끝에 순종하는 사람이 고민 없이 순종하는 사람보다 더 큰 믿음의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뒤도 안 돌아보고 주를 따르겠다고 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수없이 뒤를 돌아보고 그 다음에 주를 따르겠다고 결심한 분들이 있다. 내가 이런 순종이 더 큰 결단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훨씬 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1차 귀환 때 많은 무리가 함께 떠날 때 동참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적은 무리가 떠날 때 함께 하는 건 어렵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을 끝까지 설득하려다가 실패했던 앞서간 동포의 눈빛을 떠올렸을 수도 있고, 내가 무슨 믿음의 용사라고 지금 떠나냐? 생각했을 수도 있다) 교회를 개척했을 때, 처음에 함께 하는 것보다 후에 동참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아마 그래서 80년의 세월을 보냈을 거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라온다. 결국 숱한 고민을 해봤지만 결론이 예수라는 거다. 결론은 주님의 명령, 사명이라는 거다.


13절, 아도니감 자손 중에 나중된 자의 이름은…나중되었다는 것은 맨 마지막으로 함께 한 자라는 뜻이다. 맨 끝 사람. 막차 탄 사람. 나중에 합류한 사람의 이름을 성경은 기록해두었다. 아도니감 가문은 에스라 2장에서 이미 666명이 떠났다. 그로 부터 80년이 지난 뒤에 남아있던 사람 중 60명이 떠나는 거다. 그 마지막 사람의 이름을 성경은 기록한다. 엘리벨렛, 여우엘, 스마야. 다른 가문의 사람들은 족장 하나에 인원수가 나오지만 아도니감 가문은 마지막에 온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읊어준다. 아마도, 에스라의 기록자는 알았던 것 같다. 마지막에 합류하는게 얼마나 큰 용기와 믿음이 필요했는지. 그래서 이렇게 이름을 적어준 게 아닐까 싶다.


2절의 명단은 좀 색다르다. 비느하스 자손 게르솜, 이다말 자손 다니엘, 그리고 다윗의 자손 핫두스. 3절부터 14절에 나오는 가문은 인원수가 나오나, 이들은 그런게 없다. 가문 전체에서 한 사람씩만 온 것 같다. 제사장 둘, 왕족 하나.


그러니까 이 귀환 명단은 가문 단위로 온 집단이 12가문이고, 거기에 제사장과 왕족 대표 세 명이 더해진 구조다. 억지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나에겐 이게 의미가 있다. 12가문. 성전 봉헌 때 숫염소 12마리가 나온다. 흩어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이 아닐까? 예수님은 분명 그런 의도로 12제자를 부르셨고 그 마음을 알았기에 사도들도 가룟 유다를 대신 해 한 명의 사도들 더 뽑았다.


세 사람 중에 다윗의 자손 핫두스가 나온다. 에스라서 전체의 귀환 명단에서 명시적으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기록된 곳은 여기 한 곳이다. 에스라 2장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다윗의 자손이란 표현이 없다. 스룹바벨도 다윗의 후손이었으나 에스라 본문은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핫두스를 소개할 때 굳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밝힌다. 에스라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다윗의 계보가 살아 있다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이 아직 유효하다고. 핫두스. 그 자는 꺼지지 않는 언약의 등불을 상징하다.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도, 80년의 지체함도 상한 갈대를 꺾지 못했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못했다. 그 한 명으로 인해 계보는 계속 이어져 예수님께 닿는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렇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1차 때 돌아가지 않고 남았던 자들을 2차 때 또 부르신다. 그리고 그들을 더 격려하고 응원한다. 맨 나중된 자의 이름을 하니씩 읊어준다. 포도원의 주인 되신 예수님의 마음이다. 그때 순종하지 않았어도, 지금 하면 된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아직 머물러 있는 자들, 머뭇거리는 자들을 끊임없이 독려하라 하신다. 포기하지 않는 그 사랑이 결국 우리 모두를 회복 시킬 거다. 주님, 머뭇거려도, 주저하더라도 결국 예수를 택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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